아름다운 동행 이야기

성 바오로 가정호스피스센터

나의 두 번째 학교

작성자
stphc
작성일
2019-01-30 11:36
조회
197
<나의 두 번째 학교>

국나원 미카엘라
자원봉사자(별내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 엄마는 나에게 봉사를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나는 대답했다. “응.”
처음엔 엄마와 나를 포함한 세 팀의 모녀가 함께 봉사를 시작했다. 토요일마다 놀러 가는 기분이었다. 성 바오로 가정호스피스센터 앞뜰에 씨앗을 뿌리고 새싹들에 물을 주고, 뜨거운 여름날에는 잡초들을 뽑아주었다. 허리랑 다리도 아프고 땀은 비 오듯이 쏟아졌지만 우리는 열심히 힘을 냈다. 가을에는 뜨락에 떨어지는 은행을 줍기도 했다. 또, 자꾸만 떨어지는 낙엽을 모아 태우기도 했고 쏟아지는 눈을 쓸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점차 한 팀, 두 팀 빠지고 엄마와 나만 남게 되었다. 그 때 엄마가 물었다. “우린 어떻게 할까?” 나는 대답했다. “끝까지 해볼래.” 사실 나는 속으로 멈칫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찍 일어나 학교에 다녀왔는데 토요일은 좀 늦잠을 자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지 않으면 센터 서랍은 누가 정리하지? 서류 정리는 누가 하고? 또 뜨락의 청소는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난 끝까지 해볼래.” 그렇게 엄마와 둘이 센터에 다니게 되었다.

우리 아빠는 부끄럼이 많다. 센터에 함께 들어가진 않았지만 센터까지 항상 데려다주었다. 수녀님은 가족이 다 함께 봉사를 온다며 항상 감사를 전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취업을 하게 되었다. 토요일까지 출근을 해야 해서 나와 함께 센터에 갈 수 없었다. 엄마가 다시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또 멈칫했다. 센터에 가는 것에 있어서 엄마의 존재는 굉장히 컸기 때문이다. 아빠를 닮아 부끄러움이 많은 나에게 혼자라는 단어는 너무 큰 과제였다. 그러나 나는 용기를 내어 혼자라도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 센터에 가게 되었고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사별 가족 모임의 준비를 도우며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엄마가 없이도 내가 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나에게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한 걸음씩 성장했다.

수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엄마와 아빠가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느냐고. 엄마와 아빠라는 존재는 너무 당연해서 엄마 아빠가 있다는 것을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구나.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지. 세상엔 당연한 것이 없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조차도 나에게 그런 마음을 주신 하느님으로 인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 모두 감사하다. 나에게 부모가 있다는 것도,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내가 숨을 쉬는 것까지도 감사할 일이다.

5년간 봉사를 하면서 자란 키만큼이나 나의 마음도 자랐다. 어른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고, 부족하지만 감사하며 사는 법을 배웠으며 나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고, 알을 깨고 나오는 법을 배웠다. 매일 등교하는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센터는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마다 등교하는 두 번째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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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 가정호스피스센터

(우)12100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99 (별내동 6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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